Plants/식물과 글

선인장, 너의 이름은...

요쿠 2019. 3. 18.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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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키우고 있는 (얼마 되지 않는)식물들 중에서 유일하게 이름을 모르는 식물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선인장'인데요, 키운지 얼마나 됐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적어도 6년은 된 것 같아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이름도 모른 채 키웠지만 정이 많이 들었습니다.

오늘은 정확한 이름은 모르지만 오랜 시간 함께해준 이 선인장에 대한 이야기를 남길까 합니다.




가끔 창가에 있는 이 녀석을 보고 생각하고는 합니다.

넌 이름이 뭐지?

동네 화원 집에서 데리고 온 걸로 기억을 하는데 당시 상황에 대한 기억은 전반적으로 흐릿합니다.

이름도 궁금하지만 더욱 궁금한 건 '내가 왜 이 녀석을 키우기로 했을까'입니다.




저는 선인장 종류를 거의 키우지 않습니다.

예전에도 선인장 키우는 걸 즐겼었고 지금도 더 많은 선인장을 키우고 싶기는 하지만 현재 여건이 되지 않아서 선인장은 되도록 키우지 않는 편입니다.

햇빛을 좋아하는 선인장은 저희 집에서는 예쁘게 키우기가 어려울 것 같아서요.



선인장을 키우는 것 자체는 많이 어렵지 않지만 예쁘고 튼튼하게 키워내는 것은 별개의 문제거든요.

선인장의 통통한 몸과 아름다운 꽃을 보려면 풍부한 햇빛이 꼭 필요한데 저희 집은 그게 많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저는 선인장은 되도록이면 키우지 않아요.

어쩌다가 우리 집에 오게 된 이 녀석이랑 유기될 뻔한(?) 만세 선인장을 빼고는 저희 집에는 선인장이 없습니다.




이 선인장을 데려왔을 당시에 살았던 집은 지금보다도 더 열악한 환경의 집이었어요.

좁은 집이라 베란다도 없고 작은 창문 하나가 전부였는데 햇빛 드는 방향도 아니어서 거의 음지나 다를 바가 없었어요.

환경에도 맞지 않는 식물을 데려다가 키우게 된 건데, 내가 왜 그랬을까 하고 궁금할 때가 가끔 있어요.




이 녀석은 성장도 정말 느린 편인데요, 햇빛이 부족하기 때문에 웃자람 방지를 위해 물을 많이 굶기는 편이어서 더 그런 것 같습니다.

만세 선인장은 목이 마르면 쭈글쭈글해지거나 힘 없이 축 늘어지면서 물 달라는 표현을 적극적으로 하는데 얘는 그렇지 않거든요.

만약 식물도 생각을 할 수 있다면 '주든지 말든지.' '언젠가는 주겠지.' 이런 생각을 할 것 같은 느낌입니다.

6년을 넘게 키웠는데도 여전히 뿌리가 그리 튼실하지 않은데 그래서 성장이 더 느리나 싶기도 합니다.

물론 처음 데리고 왔을 때에 비하면 몸 크기가 많이 커지기는 했어요.

하지만 분갈이할 때마다 뿌리가 좀 더 튼실하게 자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워낙 평소에 눈에 띄지 않는 녀석이라 가끔은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인을 할 때도 있습니다.

몇 년 전에는 진짜로 죽은 줄 알았던 때도 있어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과습이나 별문제 없이 버텨 왔던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음지 가까운 곳에서도 잘 벼터주었고 지금도 햇빛 양이 많이 부족한데도 잘 버텨주는 아이라서 좀 미안하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올해는 아니지만 겨울에는 베란다 월동을 했었는데, 베란다 결로 때문에 화분에 곰팡이도 심하게 피고 비가 새서 맞기도 하고 그랬는데도 별 반응이 없습니다. 

생김새도 눈에 크게 띄지 않고 투박하고 크기도 작지만 저는 묵묵히 버티는 이 선인장이 왠지 든든한 느낌을 주어서 좋아요.




이름은 몰라도 지금껏 곁을 지켜준 선인장.

가끔 이 녀석을 보면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예전에 살았던 집도 생각나고, 힘든 시간을 보냈던 때도 생각나고 그래요.

햇빛 좋은 집으로 이사 갈 때까지 지금처럼 잘 버텨주었으면 좋겠어요.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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