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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손가락 없는 환상곡 / 오쿠이즈미 히카루 : 음악과 미스테리의 만남

요쿠 2017. 9. 18.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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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음악의 '음'자도 모른다.

피아노를 쳐본 적도 없고 평소에 클래식 음악을 듣지도 않는다.

그러니 이번에 <손가락 없는 환상곡>을 펼쳤을 때 느껴진 놀라움과 경직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책의 초반부터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음악에 대한 이야기이고, 특히 '슈만'에 대한 이야기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펼쳐지기 때문이다.

음악을 모르는 내가 이걸 다 견뎌내며 읽을 수 있을까라는 걱정을 하며 한 페이지씩 넘기며 읽었다.


(스포 없음)



이야기는 주인공이 오래된 친구로부터 편지를 받으면서 시작한다.

그 편지에는 음악 천재였던 '나가미네 마사토'가 잃었던 손가락이 재생되어 다시 피아노를 공연하는 모습을 봤다고 쓰여져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의문의 편지를 다시 꺼내어 본 주인공은 학창 시절을 회상하며 다시 과거로 발을 들이게 된다.



"고막의 진동만이 음악을 듣는 행위가 아니야. 음악을 마음으로 생각함으로써 우리는 음악을 들을 수 있어.

음악은 상상 속에서 가장 또렷하게 모습을 드러내지. 귀가 멀고 나서 베토벤은 음악을 더 잘 들을 수 있게 되었어."


- 손가락 없는 환상곡 中 -



'음악'에 대해서는 어렸을 때부터 약했다.

여자아이들이라면 한 번쯤은 다녀보고 싶어 했던 피아노 학원도 돈이 없어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학교에서 배우는 음악은 내게는 그저 '듣기 좋은 소리'를 내는 방법이었을 뿐이었다.

그러니 악보조차 제대로 읽을 줄 모르는 나에게 이 책은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이해도 쉽사리 되지 않을뿐더러 책의 중심 이야기가 되는 '슈만'의 가치와 매력이 잘 와닿지 않았기 때문에 힘들게 읽었다.

특히 초반에는 이 책을 두고 다른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강했지만 읽다가 포기하지 못했던 이유가 있었다.

전개가 어떤 식으로 될지, 그리고 주인공과 나가미네 마사토라는 천재 피아니스트에게 정말 어떤 일이 있었던 건지, 이 작가가 독자들에게 감추고 있는 미스테리는 무엇인지가 매우 궁금했다.

초반에 나오는 편지가 아니었다면 정말 읽다가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그 편지가 바로 독자들이 끝까지 읽을 수 있도록 돕는 장치는 아닐까?




" 색색의 대지가 꾸는 꿈속에서 

  모든 소리를 꿰뚫고 

  하나의 고요한 선율이 

  은밀히 귀 기울이는 자에게 울려 퍼지노라 - F. 슐레겔 "


- 손가락 없는 환상곡 中 -



음악에 대해서 관심이 많은 사람이나 평소에 클래식 음악을 즐겨 듣는 사람들에게는 훨씬 더 책의 재미를 더해주는 요소일지도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음악적 기법이나 슈만의 인생사가 나오는 부분들이 너무 지루했다.

그러나 이 책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아주 마음에 들었다.

아침저녁으로 쓸쓸해지는 날씨에 읽어서 그런지 분위기만큼은 꽤나 즐기면서 읽었던 것 같다.

이 책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몽환적이고 아름다우면서도 왠지 모르게 불길하고 어둡다.

책 자체도 '음악'처럼 다양한 느낌이 한 곳에 뒤섞여있어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묘한 느낌을 준다. 꽤 인상적인 분위기라고 할 수 있다.



"무언가를 '표현'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최대한 '음악'에 봉사해보자. 

 힘은 달리더라도 한 걸음이라도 '음악'에 다가가, 그 아름다운 소매를 만져보자.

 어찌 되었든 인간은 완벽한 연주를 할 수 없으니까.

 그런 생각이 들었을 때 빛 없는 어둠에 한 줄기 광명이 비친 듯 했다. "


- 손가락 없는 환상곡 中 -




이 책은 문학에 음악을 더한 것이 아니라 음악을 문학으로 풀어나간 책에 더 가깝다. 거기에 약간의 미스테리를 더했다.

전체적인 조화는 의외로 잘 어울렸지만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크다는 것이 독자로서는 아쉬운 부분이다.

책이 가진 분위기나 미스테리는 마음에 들었다.

초중반에는 다소 무겁고 지루하다는 생각이 강했던 반면, 뒤로 넘기면 넘길수록 점점 더 깊이 빠져들었다.

결말 부분은 깔끔한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분위기에 맞게 적절하게 끝낸 것 같다.

'음악'이라는 소재를 이렇게 하나의 스토리로 풀어나간 작가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포스팅을 마무리하고 오늘은 슈만의 환상곡을 들어봐야겠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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