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터스 : 천국을 보는 눈>이라는 프랑스 영화를 봤을 때의 충격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엑스텐션>이라는 영화를 봤을 때에도 충격적이었지만 <마터스>는 그를 뛰어넘는 충격이었다.
이번에 보게 된 <로우>라는 영화도 프랑스 영화다. 많이 잔인하지는 않을까 하며 약간 걱정을 하며 보게 되었다.
(*내용, 스포 포함)
주인공은 언니가 다니고 있는 대학의 수의학과에 입학하게 된다.
채식주의자인 주인공은 동물의 내장을 먹게 하는 혹독한 신입생 신고식을 치른 후 온몸에서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나고, 머리카락을 먹거나 폭식을 하는 등 이상한 행동을 하게 된다.
그녀는 점차 자신에게서 숨겨져 있던 또 다른 모습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데...
*리뷰에 다소 잔인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일단 생각보다 많이 잔인하지는 않았다.
전혀 잔인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내가 염려했던 것만큼의 잔인한 장면이 많이 나오지는 않는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내용은 아주 충격적이다.
이상한 신고식을 반복하고 광란의 파티를 하는 대학교의 모습도 충격적이었고 주인공이 욕망에 눈을 뜨게 되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솔직히 말해서 초반에는 주인공이 아니라 대학 자체에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저런 사람들이 수의사가 된다고?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을 한 것은 나뿐일까?
주인공은 대학교에 와서 상당히 많은 자극들을 받게 된다.
야심한 밤에 괴한처럼 얼굴을 가린 선배들이 우르르 몰려와 단체로 파티에 끌고 가기도 하고, 다 같이 불러놓고 세운 다음에 정체 모를 새빨간 피를 신입생들 머리 위로 쏟아붓고, 온몸에 물감을 쏟기도 하는 등 단순히 장난이라고는 볼 수 없는 기괴한 신고식을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일들은 앞으로 그녀의 인생에 생길 심한 변화에 비하면 별것 아닐수도 있지만 이런 일들이 그녀의 변화를 더 빨리 부추기도록 약간의 압력을 가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내용, 스포 포함)
같은 학교 선배이자 친언니는 주인공과 함께 있다가 실수로 손가락을 잘리는 사고를 당하게 된다.
그리고 이 일이 주인공에게는 아주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손을 절단 당해 기절한 언니의 옆에서 손가락을 주워 든 주인공은 거의 본능적인 자세로 피의 맛을 보게 되고, 자신도 모르게 그 손가락을 먹어보게 된다.
이 이후로는 자신의 안에 사람을 먹고자 하는 강렬한 욕망이 들어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그보다도 내게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언니의 정체였다.
알고 보니 사실은 언니도 주인공이 겪었던 일을 그대로 겪어왔던 것이다.
그리고 곧 언니는 동생에게 자신이 인간을 사냥하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마치 야생 동물들이 자신의 가족에게 어떻게 동물을 잡고 살아가는지 가르치는 것처럼 몸으로 직접 행함으로써 보여준다.
동생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식인 본능을 일단은 감추려고 하지만 언니는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것을 직접 겪어봐서 이미 알고 있다.
언니는 동생에게 이런 걸 가르치는 것이 전혀 거리낌이 없고 이상하지 않다.
그녀의 행동이나 표정이 마치 '당연히 이렇게 하는 거야'라고 말하는 듯했다.
나에게 이 자매들의 모습은 인간이나 동물도 아닌 그 중간으로 보였다.
인간 같은 동물이라고 해야 할까?
자매가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서로를 물어뜯고 싸울 때, 구경하는 학생들이 말리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물론 그녀들이 싸우는 모습도 정말 동물 같았지만 싸움을 구경하던 학생들이 말로 싸움을 말리거나 경찰에 신고하는 대신에 두 자매의 목을 스카프 같은 것으로 잡아서 제어한다.
마치 동물들이 싸울 때 사람이 동물을 제어하는 모습과도 같다.
그전에 싸움의 원인이 된 사건은 어떠한가?
언니가 술 취한 동생에게 사람의 시신을 물라고 외치며 장난치던 장면.
다른 사람들에게는 과도하고 미친 짓일지 몰라도 장난치는 언니에게는 그저 하나의 놀이나 재미였을 뿐이다.
처음에는 억지로 날 것을 먹게 된 것, 계속해서 들어오는 자극 때문에 그녀가 심리적으로 불안정하다고만 생각했었다.
타고난 것이 아니라 어떤 이유로 인해서 그녀가 미쳐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를 다 본 지금 생각해 보면 감독은 우리에게 이 자매가 미친 게 아니라는 것에 대해 계속 힌트를 주고 있었다.
주인공은 자신이 이상해지고 있음을 알게 되면서 혼란을 느끼기는 하지만 그 누군가에게 가서 도움을 청하려고 하지 않는다.
(나라면 당장 부모님에게, 그리고 병원부터 가볼 것 같다)
그리고 언니의 손가락이 잘려나가는 사고를 겪었을 때 언니의 거짓말로 인해 키우던 개가 안락사를 당할 위기에 처하는데도 주인공은 자신이 그랬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지 않으며, 언니에게도 '호기심에 그랬어'라고 말할 뿐이었다.
교수님이 주인공에게 부정행위를 한 것 같다며 추궁하자 그녀는 룸메이트가 한 거라고 말해버린다.
온실 속의 화초처럼 지내온 그녀가 전혀 어울리지 않는 행동을 하는 것이다.
그녀는 겉으로만 부정하는 듯한 모습을 보일 뿐, 사실은 이미 포식자의 생존법을 조금씩이나마 따르고 있었다.
학교에서 학생들이 광란의 파티를 벌이는 모습, 자신이 먹고 싶다면 그냥 본능적으로 집어삼키는 주인공 자매의 모습.
그들은 하고 싶다고 마음먹은 것은 그대로 따라가려는,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모습을 보인다.
감독은 사실 우리에게는 아주 잔인한 원초적인 본능이 어딘가에 숨겨져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던진다.
그리고 그 밑바닥에 숨어있는 본능을 따른다면, 인간들은 상상 그 이상으로 잔인해질지도 모른다.
또, 언니의 손가락을 먹은 것으로 몰린 개가 억울하게 안락사를 당하고야 마는 내용이 나올 때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사람이라면? 이미 피의 맛을 본 동물은 위험해서 안락사를 시킨다면... 만약 사람이 사람의 피 맛을 봤을 때에는 어떻게 되는 거지?
그리고 무섭게도, 그것이 치유되지 않는 원래 본능이라면?
쉽사리 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인데도 이 질문은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내용이 충격적이고 끔찍하며, 다소 난해하다.
감독이 의도하는 대로 따라가기에 조금 벅찼고, 불쾌한 기분이 들게 만드는 영화였다.
하지만 연기자들의 연기가 좋았고 특히 불안한 심리를 고조시키는 전개와 음악이 아주 훌륭했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충격적인 영화였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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