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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는 재미와 여운까지,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 우타노 쇼고

요쿠 2018. 5. 22. 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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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추리소설이 주는 놀라움을 굉장히 좋아한다.

맞출 때보다는 맞추지 못하고 내가 완전히 속아서 감탄할 때 책 참 잘 골랐다 싶은 기분이 든다. 

어떻게 글을 이렇게 쓸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놀라운 반전이나 트릭을 쓴 추리 소설들.

그런 의미에서 <살육에 이르는 병>이나 <미로관의 살인>과 같은 책들은 비교적 기억에 더 오래 남는 편이다.

이번에 읽은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도 기억에 아주 오랫동안 머무를 것 같다.

나는 작가에게 완전히 속았다.



(내용 포함, 스포 없음)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 우타노 쇼고 / 김성기 옮김 / 한스미디어)


주인공 나루세는 어느 날, 지하철에서 자살을 시도하던 한 여성을 구한다.

그 여성과 점차 가까워지는 동시에 나루세는 후배가 짝사랑하는 여성에게서 한가지 부탁을 받게 된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교통사고로 사망한 할아버지가 사실은 보험 사기 때문에 살해당했다는 것이다.

그녀가 유력한 용의자로 뽑은 건 '호라이 클럽'이라는 사기 조직.

'호라이 클럽'은 건강식품이나 음료, 침구 등을 터무니없는 가격에 강매하는 회사다.

'호라이 클럽'에 대해 조사해달라는 부탁을 받은 나루세.

그는 사기 조직의 뒤를 캐다가 위기에 처하게 되는데...




지하철에서 자살하려던 여자와의 만남, 호라이 클럽에 대한 조사와 과거에 탐정 사무소에서 일하다 야쿠자로 위장하게 된 사연 등 여러 가지의 이야기들이 교차된다.

다소 정신없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은 구성이지만 딱히 복잡하다는 걸 느낄 새도 없이 흥미진진했다.

다 읽고 나서 생각해보건대, 오히려 이 책을 더 재밌게 읽을 수 있었던 요인이 아닐까 싶다.  

특히 주인공인 나루세가 야쿠자로 위장했던 때의 이야기는 정말 재밌었다.

주인공이 겪었던 일, 그리고 현재 겪는 일들을 적절히 교차하면서 여러 번의 놀라움을 선사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신이 내게 그러더군, 인간의 살아 있는 피를 빨아대며 발칙한 악행을 일삼는 세상의 추악한 귀신들을 물리치고 오라고."


-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



호라이 클럽은 주로 노인을 대상으로 '건강'에 좋다는 음료, 식품들과 생활용품 등을 비싼 가격에 강매한다.

처음에는 전단지를 보고 행사장으로 찾아온 사람에게 값비싼 물을 무료로 주고, 온갖 건강식품이나 음료를 마음껏 시음해볼 수 있도록 한다. 그리고는 원래 가격보다 훨씬 더 싼 가격으로 물건을 판다고 유혹한다.

그 후에는 방문 판매까지 해서 어떻게 해서든 사게 만드는 것이 그들의 수법이고,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소비자들은 빚더미에 눌러앉게 되는 것이다.

많은 금액의 빚을 진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대출을 갚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우리는 실제로도 종종 '행사장'이라고 불리는 곳에서 노인들을 상대로 물건들을 비싼 가격에 판매하거나 믿을 수 있을만한 품질이 아닌 제품들을 판매하는 사기 범죄들을 뉴스를 통해 볼 수 있다.

소설을 읽으면서 그 사실이 떠올라 안타까웠다.



"좋아하는 사람이 죽으면 가슴이 미어질 거야. 그런 상처는 쉽게 아물지도 않아.

그 사람이 사랑하는 여자라면 상처는 더 오래가겠지."


-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



이 책은 사회파 추리소설의 면모를 잘 살려냈다.

보험금 살해와 야쿠자, 사기와 마약, 고령화 시대 등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드러낸다.

그동안 내가 읽은 사회파 추리 소설들은 주제가 한두 개 정도로 좁혀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책은 여러 가지여서 그 점이 인상적이었다.

읽으면서 안타깝기도 하고 조금은 슬프기도 하고, 화나거나 답답하기도 하고.

다양한 이야기만큼 많은 감정들을 느끼게 하는 책이다.



" 그러나 지금도 벚나무는 살아 있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빨간색과 노란색으로 물든 벚나무 이파리는 찬바람이 불어도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


-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



사회파 추리 소설의 면모를 잘 드러낸 반면에, 정말 큰 놀라움을 주는 소설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선입견을 파고드는데 나도 완전히 속아버렸다.

<살육에 이르는 병>만큼이나 놀라움을 금치 못했던 소설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살육에 이르는 병>은 강한 충격이 확 들어오는 느낌이지만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는 놀라움과 함께 약간의 여운도 선사한다.




읽는 동안 지루했던 부분도 딱히 없었고 다 읽고 나서도 너무 만족스럽다.

왠지 사기당한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약간 무리수 아닌가 싶은 생각도 조금 드는데 이 정도의 트릭과 반전, 여운이라면 크게 아쉬울 정도는 아니다.

우타노 쇼고의 <밀실 살인 게임>보다 이 책이 훨씬 더 재밌었다.

모든 것이 하나씩 맞춰지는 순간, 제목의 의미를 다시 깨닫게 되는 순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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