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책 읽고 남기기

[책] 그레이스 / 마거릿 애트우드 : 그녀는 과연 살인범이었을까?

요쿠 2018. 7. 9. 03:49
반응형


1840년대, 캐나다에서 충격적인 살인 사건이 벌어졌다. 피해자는 토머스 키니어와 그의 가정부 낸시 몽고메리.

키니어의 집에서 하녀로 일했던 그레이스 마크스와 일꾼인 제임스 맥더모트는 사건 후에 함께 도주했다가 용의자로 체포되었다.

체포 당시, 그레이스는 10대 소녀였고 세간의 관심은 온통 그레이스 마크스라는 소녀에게 집중되었다. 

법정에서 맥더모트는 그레이스가 사건을 주도했다고 진술했지만 그녀는 살인 사건 당시에 대해 기억이 제대로 나지 않는다고 진술했고, 맥더모트는 사형이 집행되었으나 그레이스는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정신의학 전문가인 사이먼 조던 박사는 그녀의 정신 상태에 대해 연구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그녀와 대화할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고, 그레이스는 어렸을 때부터 사건이 일어나기까지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털어놓게 된다.




놀랍게도 이 책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책이다.

작가는 이 책을 쓰기 전에, '그레이스 마크스'라는 실존 인물을 중심으로 <하녀>라는 드라마의 극본을 집필했었다고 한다. 그 후에 그레이스라는 인물과 살인 사건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었고, 그렇게 만들어진 소설이 이 <그레이스>라고 한다.

'작가의 말' 부분을 보면 작가가 이 책을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조사와 철저한 준비를 했는지 알 수 있는데, 그만큼 작가가 그레이스라는 인물에 대해 강하게 매료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레이스>는 살인 사건과 그레이스뿐만 아니라 그레이스와 주변 인물들의 관계에 대한 의문, 당시 사회적으로 억압받았던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와 정신 의학, 종교, 심령술, 하녀의 이야기까지 폭넓게 다룬다.



" 살인범은 어감이 강한 꼬리표다. 그 단어에서는 냄새가 난다.

꽃병에서 죽은 꽃처럼 사향 비슷하고 답답한 냄새가 난다.

나는 가끔 밤에 혼자서 그 단어를 중얼거린다. 살인범, 살인범. "


- 그레이스 -



그녀의 정신 상태에 큰 관심이 있는 사이먼 조던 박사가 그레이스와 대화를 하게 되면서, 독자들도 자연스럽게 '그레이스'라는 인물의 인생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초반에는 재밌지도 않았고, 그레이스라는 인물에 대해서도 별다른 감정을 느끼지 못했지만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점점 더 빠져들었다.

어머니의 불행한 죽음과 무능한 술 꾼이었던 아버지를 떠나 하녀로 살게 된 이야기, 친구의 죽음과 살인 사건까지. 

한 10대 소녀의 인생 이야기라고 보기에는 너무 파란만장하고 극적이었다.



" 두 사람은 이제 공백의 수수께끼, 기억이 지워진 부분으로 다가가고 있다.

모든 게 제 이름을 잃어버리는 기억상실의 숲으로 들어서고 있다.

살인 사건이 벌어지기 바로 직전의 사건들을 되짚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그녀가 하는 그 어떤 말도 단서가 될 수 있다. "


- 그레이스 -



사이먼 조던 박사라는 인물은 작가 본인이자 독자들이기도 하다.

사건에 대한 관심도 많고 그레이스라는 인물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사건의 전말을 알아내고 싶어 하지만 이미 너무 오래된 일이고, 사건이 벌어졌던 집에는 당사자들만이 있었기에 진실은 저 아래에 묻혀있다.

독자는 사이먼 조던 박사처럼 '그레이스 마크스'라는 인물에 대해 의문, 호기심, 안타까움, 연민을 느끼고 매료된다.

단정한 외모와 꼼꼼하고 차분한 성격을 가진 소녀, 그녀는 과연 살인범일까? 아니면 바보같이 순수한 희생양일까?

평소에 거짓말을 일삼았던 제임스 맥더모트의 진술이 거짓말이었을까, 아니면 진실이었을까.

그레이스의 기억상실은 정말 있었을까, 아니면 적당히 꾸며낸 것이었을까.

그레이스는 정말 맥더모트의 폭력성에 두려움을 느끼고 함께 도주한 걸까 아니면 맥더모트의 말대로 그레이스가 교활하고 악독한 살인범이었던 걸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수많은 의문점들이 머리를 스쳤고, 그 미로 같은 수수께끼에 푹 젖어 헤어 나올 수 없었다.

그레이스는 과연 살인범이었을까?

그녀가 살인범이었다면 정말 소름 끼칠 것이고, 무고한 희생양이었다면 슬플 것이다.

하지만 진실은 이 세상에 없으니 알 수 없다.

과연 무엇이 진실이었을까?




책을 읽는 내내 꿈 길을 걷는 것만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문장은 단호하고 담담한데도 몽환적이고 아름다운 분위기가 감돈다.

그레이스라는 인물도 그렇고, 책 자체도 굉장히 오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처음에는 단순히 미스테리 소설을 상상하며 읽었지만 이 책은 묵직하고 다양한 주제들을 꼬집는다.

당시 배경과 인물들의 디테일이 잘 살아있었고, 여운이 좋아서 다 읽고 난 후에도 나도 모르게 자꾸만 사건에 대한 의문점과 '그레이스'라는 인물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 중에 그 뒷면에 숨겨진 '진실'까지 다 알고 있는 것들은 과연 얼마나 될까 하고 생각해본다.


- 끝 -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