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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악의 내면 세계를 그리다 : 종의 기원 / 정유정

요쿠 2019. 12. 5.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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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기원, 이 책의 제목에서 말하는 '종'은 악을 행하는 인간들, 그중에서도 포식자. 즉, 사이코패스를 의미한다.

그들은 실제로도 우리 주변에 존재하고 끔찍한 살인 사건들이 발생할 때 이들에 대한 관심이 쏟아지곤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을 이해하거나 가까이 다가갈 수 없다.

단지 표면상으로 '~한 사람들'로 불릴 뿐이다.

정유정 작가의 <종의 기원>은 악이 어떻게 생겨나고, 어떻게 세상 밖으로 표출되는지를 상상하여 그려낸 소설이다.



*개개인에 따라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 없습니다*



종의 기원(the origin of species) / 정유정 / 은행나무



유진은 친구인 해진과 엄마와 함께 살고 있다.

반복적인 발작 증상을 일으키는 병을 앓고 있었던 유진은 어느 날, 피 냄새에 잠에서 깬다.

자리에서 일어난 유진은 살해된 어머니의 시신을 발견하게 되는데...



" 피 냄새가 잠을 깨웠다. "


- 정유정의 <종의 기원>중에서




유진은 잠에서 깨어나 발견한 어머니의 시신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그는 엄마가 살해를 당했을 당시의 기억이 뚜렷하지 않음을 깨닫게 되고, 상황을 보다 더 분명하게 파악하고 자신의 기억 속 빈자리를 채워나가기 위해 애쓰게 된다.

초반에는 다른 여느 스릴러 소설처럼 전개되는 듯한 느낌이 드는데, 자연스럽게 독자들은 주인공이 이 상황에서 어떻게 벗어날 것인지에 대해 궁금해하며 책을 읽어나가게 된다.

하지만 유진에게 불리한 증거들이 하나둘씩 나오면서 독자들은 조금씩 주인공인 유진이 우리와는 다른 어떠한 '종'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싹트기 시작한다.



" 유진이 너는... 이 세상에 살아서는 안될 놈이야. "


- 정유정의 <종의 기원> 중에서



주인공에 대한 의심이 확신으로 변한 시점이 지나면서도 여러 가지 의문점들이 남아있다.

그가 가진 병과 그가 꾸준히 먹었던 약이 과연 이 사건과는 어떻게 연관이 되어 있는 것일까.

유진과 상담을 하고 주기적으로 약을 처방해주는 이모는 과연 유진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그리고 유진과 함께 살고 있는 친한 친구인 해진의 역할은 무엇일까.

이러한 미스테리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마치 퍼즐 조각처럼 하나둘씩 맞춰지기 시작한다.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었고, 모든 것들은 연결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포식자인 유진이 있었다.



 " 망각은 궁극의 거짓말이다.

   나 자신에게 할 수 있는 완벽한 거짓이다. "


- 정유정의 <종의 기원> 중에서




개인적으로는 <7년의 밤>보다 이 책이 더 몰입이 잘 되고 재밌었다.

<7년의 밤>보다 무대는 더 좁지만 오로지 주인공의 시점을 따라가다 보니 긴장감이나 몰입도가 더 배가되기 때문이다.

마치 약한 불로 육수를 우려내듯 천천히 전개되는데, 후반부로 가면 갈수록 몰입이 너무 잘 돼서 거의 끝부분에 다다라서는 책을 읽으면서 숨이 막히는 듯한 기분까지 들었다.

사실 <7년의 밤>보다는 약간 별로이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했었는데, 기우였다.

너무 좋았던 소설.



" 운명은 제 할 일을 잊는 법이 없다. 한쪽 눈을 감아줄 때도 있겠지만 그건 한 번 정도일 것이다.

  올 것은 결국 오고, 벌어질 일은 끝내 벌어진다. "


- 정유정의 <종의 기원> 중에서




<종의 기원>은 탁월한 심리 묘사와 뛰어난 몰입도를 자랑한다.

하지만 역시 다소 불편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읽을 수밖에 없는 소설이었다.

나 자신을 포함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절대 넘어가선 안된다고 그어놓은 선을 소설 속 주인공이 계속 넘나드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봐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설이라는 형태를 빌려 그들의 본 모습을 망원경으로 보듯 자세하게 바라볼 수 있었기에 아주 좋은 작품임에는 분명하다.

<종의 기원>은 악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소설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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