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유키코는 다크 미스터리의 여왕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일본의 작가다.
대표작으로는 <고충증>과 <살인귀 후지코의 충동>이라는 작품이 있다.
이 작가에 대해서는 몇 번 관심을 가진 적도 있었지만 워낙 색채가 강하고 독특해서 취향을 많이 탄다는 이야기를 듣고 계속해서 망설이기만 했다.
그런데 저번에 <이사>라는 공포 소설이 나왔다는 걸 알게 되었고, 이번에 처음으로 마리 유키코라는 작가의 책을 읽어보게 되었다.
책 <이사>는 여섯 가지의 이야기로 구성된 공포 단편집으로,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듯 '이사'와 관련된 여러 괴담과도 같은 이야기가 펼쳐진다.
#스포일러 없음
'원래 이 집에 살았던 사람은 누구였을까?'
''저 구석에 보이는 저건 뭐지?'
'가끔씩 옆집에서 들리는 이 묘한 소리의 정체는 무엇일까?'
'집'이라는 공간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공간이다.
내가 밥을 먹고 휴식을 취하며 숨을 트이고 쉴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집'과 관련된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누구나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내가 쉬는 공간, 오롯이 내가 나로서 있을 수 있는 공간에 조금이라도 신경 쓰일만한 것이 있다면 그 누구도 불안해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사'를 하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한 일이다.
내가 온전히 쉴 수 있는 적절한 공간을 찾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마땅한 공간을 찾고 오랫동안 보관한 온갖 잡동사니들을 정리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이 모든 과정이 필요한 일임과 동시에 매우 중요한 일이기에 그만큼 이사를 간다는 건 실로 피로하고 골치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조금이라도 더 깨끗하고 더 좋은 집을 찾아서, 혹은 현실적 문제에 떠밀려 이사를 다닌다.
그리고 그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알 수 없다.
작가는 누구나 공감할법한 '이사'라는 상황과 인간의 어두운 측면을 소재로 훌륭한 공포 소설을 탄생시켰다.
" 저는 목소리에 시달리고 있어요.
한밤중에 옆집에서 뭔가 목소리가 들린다고요. "
- 마리 유키코, <이사> 중에서 -
책 <이사>는 흡사 도시 괴담과 비슷한 듯하면서도 묘하게 다른 느낌이 든다. 내가 이 책을 보면서 놀랐던 것은 기존에 봐왔던 도시 괴담 이야기를 소재로 한 책들보다 훨씬 더 이야기를 생생하고 담담하게 풀어낸다는 점이었다.
극적인 장면을 굳이 묘사하지 않는데도 점점 더해지는 불길함. 문장 어디에선가 배어 나오는 듯한 찝찝함.
그런데도 계속 읽게 하는,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 맞다. 생각났다.
여기로 이사 왔을 때 어디에도 둘 곳이
마땅치 않은 물건들을 일단 여기에 처박아놓았다. "
- 마리 유키코, <이사> 중에서 -
가끔씩 그럴 때가 있다.
불이 거의 꺼진 늦은 밤에 집 안에 있는 아주 좁은 한구석의 빈 공간이 가끔 신경 쓰일 때가 있다.
뭔가가 있을 것만 같은 기분.
근거는 없다. 단지 그런 '느낌'일 뿐.
불을 켜고 확인해봤을 때에는 역시 아무것도 없다.
이번에 읽은 마리 유키코의 공포 소설 <이사>가 나에게는 그런 느낌이었다.
익숙한 공간임에도 왠지 낯설게 느껴지고 별다른 이유 없이 마음 깊숙한 곳에서 치고 올라오는 불안함과 공포.
정말... 아무것도 없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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